사람 - 중학교 때 어느 순간의 기억
타이탄의 도구들을 읽고 있다가 불현듯 중학교 때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.
그 당시 남중을 다니던 또래들은 그 시절의 사내 아이들 답게 과격한 장난들을 많이 치던 시기였다.
WWF에서 봤던 기술을 흉내 낸다고 친구의 옆머리를 무릎으로 쓸어내리는 등.
그 날도 친구들은 내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대여섯명이서 손을 흔들면서 누가 때렸는지 모르게 장난을 쳤다.
당한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, 재밌기도 한 것 같아서 그 장난에 동참했다.
처음에는 다른 친구가 때리면 뒤에서 머리 옆으로 양손을 흔들면서 놀리는 것에만 참여하다가 점점 대담해져서 마지막에는 친구의 머리를 내가 한 대 세게 때렸다. 손 맛을 보니 찰지게 들어간게 확실했다. 다른 친구의 손도 뒤따라 들어왔지만 내가 조금 빨랐다.
그 녀석은 정색을 하더니 친구들에게 돌아가면서 조용히 "너야?" 라고 물었고,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안 친구들은 아니라고 답했다.
결국 마지막 차례가 나였고 거기서 그냥 내가 때린 거 맞다고 하고 한 대 맞았으면 됐을텐데...
걔는 처음 내 머리를 때린 장난에 참여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갑자기 나도 화가 났다.
서로 밀치기를 몇 번 내가 마지막으로 밀면서 "이 새끼가 정말~~~"
그 뒤에 처음으로 별이 보인다는 표현을 이해했다.
이미 결판은 나 있었는데 미련을 못 버리고 한 대라도 때려보겠다고 덤볐다가 본전도 못찾았다.
결국 친구가 말렸으니 다행이지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.
그 상태에서도 입안이 많이 찢어져서 13바늘인가를 꼬맸다.
다음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았던 나는 그 날 수업이 끝났던 건지 그냥 집에 간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...
상태를 몰랐던 나는 집에 가서는 축구공에 세게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.
입안을 본 의사 선생님왈 "걸레가 됐네..."
대충 상황이 어떤지는 같이 입 안을 본 엄마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.
뻔한 내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고 아마도 엄마가 학교에 전화를 했던 것으로 짐작한다.
나를 때린 친구가 상황을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, 아마도 자신도 그 장난을 함께 쳤다는 얘기는 빼지 않고 단순히 선량한 피해자라고만 했던 것 같다.
나는 그 뒤로 담임 선생님께 찍혔던 것 같다.
그 친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 친구에게 "그런 일이 있었으면 선생님한테 얘기하지 그럼 내가 혼내줬을텐데..."
그리고, 나는 상태가 괜찮아진 순간부터 매 쉬는 시간 교무실에 불려가서 무릎 꿇고 반성문을 썼다.
담임 선생님은 옆에 계신 다른 선생님께 어떻게 얘기했는지 두 분이서 하는 얘길 들으니 대략 내용은 이랬다.
"얘 그냥 여기 혼자 둬도 되요? 도망가면 어떻해요?"
"퇴학시켜야지..."
내 기억이 정확한지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퇴학시켜야지...이 말은 정확히 기억한다.
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 억울해서 상황을 설명한 편지를 써서 담임 선생님 책상에 올려뒀다.
내 기억에는 그 이후로 교무실에는 더 이상 불려가지 않았다.
이 사건이 있은 후로 영어 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나를 잠깐 불렀던 적이 있었다.
그리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셨다.
순간 왈칵 눈물이 나서 한참을 울었었다.
영어 선생님이 그 때 "니가 1학년에 비해서 2학년 때 많이 달라진 것 같아." 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위로가 됐었다.
이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사실 중, 고등학교 때 남자들이 친구들과 싸우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.
그러다 다치기도 하고...
하지만, 교무실에서 맞은 학생을 상대로 저렇게 얘기하는 건 몇십년이 흐른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.
더군다나 어쨌든 싸웠는데 그리고 맞은 건 난데 때린 친구의 설명만 듣고 저렇게 얘기한 선생님을 한 동안 미워했었다.
그리고, 커가면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모두 사랑으로만 대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.